[ 경건칼럼 - 2024년 05월 01일 ]
다시 마음을 베라
1. 본문의 배경
4장의 말씀은 멸망으로 치닫는 이스라엘의 남유다를 향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지막 경고를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a. 할례 받은 백성들
하나님께서 태어난 지 8일된 남자아이의 양피를 베도록 하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그 살에 새겨 기억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행한 백성만이 제사를 드릴 수 있었듯이 할례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나타내었습니다. 할례의 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살에 새긴 표였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회심을 경험하였던 때가 바로 할례 받은 때입니다. 하나님께만 헌신된 사람이라는 표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겠다는 표입니다. 할례를 받을 때에 아픔이 있었으나,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하늘의 보물들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을 잊은 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마음 먹은 것을 잊고, 세상을 의지하며 자신을 사랑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b. 가시덤불에 씨 뿌리는 사람들
가시덤불에 파종치 말라고 하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가시덤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밖에서 찾으려는 나라의 번영과 행복을 말합니다. 세상을 의지하는 마음, 세상에 대한 집착적 사랑, 자기 욕망에 충성하는 것은 가시덤불 속에서 간신히 자라나는 작물과 같이 크나큰 소출을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땅을 기경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시덤불을 뿌리 채 뽑아내 태워버려야 재가 거름이 되어 땅을 기름지게 합니다. 우리 마음의 가시덤불을 성령의 불로 태우고 회개하여야, 그로 인해 마음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더욱 잘 자라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어도, 하나님만을 찾고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않으면 순전함에 있어서 이미 오염된 상태인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가 씨앗으로 뿌려질 때, 어떤 마음 밭으로 받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과 세상을 사랑하는 두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뿌리내린 가시덤불들을 먼저 태워 버려야, 우리가 받은 은혜가 결실을 맺어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
a. 마음의 할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간신히 유지하면서, 하나님 안에 안전하다고 안심하고 교만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진실한 참회, 진실한 자기 깨어짐이 있는 신앙생활이 아니라면, 참 성도로서의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마음 가죽에 더러운 것들이 끼어 마음을 부패하게 만들고 있다면, 그 무엇으로 하나님을 섬겨도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적합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십니다. 마음의 살가죽을 베어내는 일은 죽기까지의 아픔을 무릅쓰더라도 스스로 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죽는 아픔을 경험하여야, 예수님의 죽기까지의 고통에 참예하여 더욱 주님께 다가가는 영혼의 축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가죽을 베어 내기를 명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크나큰 사랑의 마음이십니다.
b. 하나님과의 합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속하라’고 명하십니다. ‘속한다’는 것은 함께 하나 되어, 생명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일들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있어도, 마음의 할례가 없다면 결코 하나님께 속할 수 없습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받아 가죽을 베이는 일이 없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면하여 만나거나, 하나님께 속할 수 없습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마음의 할례를 행하여 주님께 속한 자가 되는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 스펄전과 함께 QT - 2024년 05월 01일 ]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아가 5 : 13)
계절의 여왕 5월이 찾아왔습니다! 꽃샘바람이 불던 삼사 월이 지나고 온 땅이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로 뒤덮이는 5월이 찾아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천국 생각들로 엮은 화환들을 모으러 들로 나갑시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꽃밭"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향기로운 풀언덕"의 향내를 자주 맡아 왔기 때문에 여러분이 몹시 사랑하는 주님께 즉시 달려가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사랑스러움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때 채찍에 심하게 맞았던 그 뺨, 동정의 눈물이 자주 흘러내리던 그 뺨, 침 세례까지 받았던 그 뺨, 자비로운 미소를 띠면 마치 아름다운 향내가 나는 것 같던 그 뺨. 주님은 사람들이 경멸하고 침을 뱉을 때도 그 얼굴을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오 주 예수님이시여, 그래서 주님을 찬양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그 두 뺨이 깊은 고뇌와 슬픔으로 주름져 있었으며 가시 면류관 쓴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한하신 주님의 사랑의 표지들을 보며 우리 영혼은 넋을 잃고 맙니다. 그것은 “향수로 만들어진 기둥"보다 더 황홀하게 만듭니다. 만일 주님의 얼굴 전체를 뵐 수 없다면, 그 뺨만이라도 보십시오. 주님을 힐끗 뵙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영혼은 새롭게 소생하며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으로 뛰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향기뿐 아니라 향기로운 꽃밭을 발견합니다. 단 한 송이의 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아름다운 꽃들을 다 발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장미꽃도 되고 백합화도 되며 삼색제비꽃도 되고 헤나 나무도 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일 년 열두 달이 5월입니다. 우리 영혼이 주님의 은혜의 아침 이슬에 그 행복한 얼굴을 씻고 주님의 약속의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위로를 얻습니다.
귀하고 복되신 주 예수님, 주님과 끊임없는 교제 속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실천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비록 무가치하고 불쌍한 죄인이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의 뺨에 입 맞추어 주셨습니다! 오, 주님. 저희도 그 답례로 주님께 입 맞출 수 있게 해주소서.
[ J.I패커와 함께 QT - 2024년 05월 01일 ]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시 34 : 1-3)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와 구속을 통해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모든 것을 볼 때 우리는 끊임없이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은 무한히 찬양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명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하나님이 보여 주신 모든 영광스러운 일들(능력과 행사)로 인해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찬양하는) 일이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의 첫 번째 항목에 나와 있듯이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은 만방에 알려지고 송축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이렇게 그를 높여 드리지 못하면, 자신의 최상의 행복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당연한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창조주와의 사랑의 관계를 풍성하게 누리고 찬양의 기쁨을 끊임없이 탐험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찬양의 기쁨을 대신할 수 없다(1986c:25).
묵상: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 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2024년 05월 01일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 : 18-19)
에베소서 5장 18절은“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최소한 4가지 결과가 생긴다.
첫째, 19절의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는 구절로 보아 매우 음악적인 결과가 나온다.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확실히 성령 충만의 상징이다.
둘째, 19절에서 알 수 있듯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성령 충만의 표시다. 하나님께서는 불평, 자기 연민, 원한, 낙심, 염려, 실망, 침울, 비관 등을 이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 충만함을 주시며 모든 일에 감사하게 하신다.
셋째, 신령한 노래와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 위에 서로 순종하는 것이 더해진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21절). 성령 충만함의 상징은 기쁨, 감사, 겸손한 사랑이다.
넷째, 말씀을 담대하게 증거하게 된다. 사도행전 4장 31절은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라고 적고 있다. 성령님이 심령 속에 기쁨을 넘치게 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피차 순종하는 마음을 주셨을 때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 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는 성령님을 찾고 따라 다니며 그 충만함을 입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어떻게 해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먼저 비유를 음미해보자. 18절은“술 취하지 말라” 고 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다. 술에 취하려면 마셔야 한다. 그것도 많이 마셔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령에 충만하려면 성령을 많이 마셔야 한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은 우리가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고 했고, 예수님께서는“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38)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을 마실 수 있는가? 로마서 8장 5절은 성령을 좇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성령의 일을 생각함으로써 성령을 마신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골로새서 3장 1-2절은“위엣 것을 찾으라”고 말한다.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생각한다는 것은 추구하고 주의를 집중하고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빌 3:19). 어떤 일에 헌신하고 그 일에 흥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마신다는 것은 성령의 일을 추구하고 성령의 일에 주의를 집중하고 성령의 일에 헌신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일이란 어떤 것인가?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서 육신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성령의 일은 성령이 가르쳐주신 말씀을 의미하는데(13절), 곧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과 계획에 대한 말씀을 뜻한다(2:8-10). 그러므로 성령의 일은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말씀하셨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곧 성령의 일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마신다는 것은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는 뜻이고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하면 성령에 취하게 되고 성령으로 중독되고 결국 성령님을 의지하게 된다.
한 가지 더 있다. 성령님은 술이 아니고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임의로 가고 오고 하신다(요 3:8). 누가복음 11장 13절 말씀도 덧붙이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의 충만함을 얻으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했다(엡3:19).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교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간구했다.
성령님을 마시고 기도하라. 성령님을 마시고 기도하라. 성령님을 마시고 기도하라.
[ 은혜와 사명 - 2024년 05월 01일 ]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여야 하는 궁극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 성구 ]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 내용 ]
살아가면서 우리는 농담처럼 “왜 사니?” 라는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신자는 그 말에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증명해 보여주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그 첫 번째 항목에서 인간의 존재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기 위해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기여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모든 사명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에 닿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섬김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며, 주어진 일들을 최선을 다하여 이루어 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기뻐하며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 분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우리 각자에게는 각각의 재능을 따라 맡겨진 고유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일은 최선을 다해 그 사명을 따라 사는 일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기 원하옵니다” 하는 마음으로…….
[ 묵상 ]
청교도 존 오웬(John Owen)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특징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이라는 분명한 목표 아래,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 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은혜와 사명 - 부흥과개혁사 ]
[ 은혜와 사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