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건칼럼 - 2024년 04월 28일 ]
거듭나기를 사모하라
1. 본문의 배경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신령한 거듭남이 과연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듭난다’고 말할 때 ‘두 번째 태어남’은 성령 안에서 태어나 영혼이 새로워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예수의 몸으로 접붙여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2. 접붙임과 거듭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자여야 하고,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살이 되려면 본성의 변화, 즉 회심과 중생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3. 거듭나지 못한 자
인간의 원래 모습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로, 곧 거듭나지 못한 자입니다.
a. 영혼이 죽은 상태
죽음이 찾아들면 육신의 모든 작용은 멈추지만, 영혼의 작용은 지속됩니다. 그러나 육신이 살아있어도 영혼은 죽어있는 상태가 있을 수 있으며, 이것을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고 표현합니다. 참다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시며, 예수께 접붙여져서 예수의 생명이 흘러가야 참으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죽어있다는 것은 신령한 것에 대해 작용할 능력이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는 신령한 세계를 선명하게 깨달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것은 예수의 몸에 붙어야만 느낄 수 있는 감각입니다. 따라서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서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b.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
거듭난 후 영적 생명을 지닌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의 유혹에 잠시 미혹되더라도,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다시 돌이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유혹에 빠졌다가 돌아오는 이들이라도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영혼이 죽은 자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어, 죽은 영혼으로 죽은 행실만을 할 뿐입니다.
c. 죽은 행실
죽은 행실의 열매들은 비방과 교만, 수군수군함, 탐욕, 음란함, 악독 등입니다. 반면 예수께 접붙여진 행실의 열매들은 선함, 인내, 절제, 친절함 등 하나님을 향해 살아있는 행실의 열매입니다.
4.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a. 물 : 성령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할 때, ‘물’이란 정결케 하는 작용입니다. 거듭나 회심한 자의 마음에 남은 죄에 대하여 성령께서 그를 정결토록 작용하십니다.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고, 정결케하시는 성령님의 작용으로 그는 향기로운 사람이 됩니다. 여러 유혹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기도로 마음을 다스리며 맑은 마음으로 주님을 순전하게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b. 성령 : 쇄신
성령님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작용을 하십니다. 본질적인 면에서 변화되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살았던 삶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사는 삶으로 옮겨갑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인격이 일회적으로 완전히 변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시간을 들여 변하도록 역사하십니다.
5. 거듭나기를 사모하라
참된 눈물로 회개했던 분명한 경험이 없다면 아직 회심치 않았다고 인정하십시오. 거듭나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상태로 돌아가게 해달락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인생의 수많은 위기와 고난 중에 주께서 우리를 이끌어 내주신 것을 깨달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중생케 하시는 은혜 속에 우리는 예수의 몸에 접붙여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참으시며 기다리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 스펄전과 함께 QT - 2024년 04월 28일 ]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시편 119 : 49)
여러분은 어떤 필요를 갖고 있든 그에 해당되는 약속을 성경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혹시 갈 길이 험하고 피곤해서 정신이 혼미해져 약한 상태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기 여러분을 위한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사 40:29). 이런 약속의 말씀을 읽으면 이것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들고 가서 하나님이 친히 하신 이 말씀을 이루어 달라고 요구하십시오.
혹시 그리스도를 찾아 구하며 그분과 좀 더 가까운 교제를 나누기를 갈망하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별처럼 반짝이는 이 약속의 말씀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이 약속을 계속 하나님의 보좌로 가지고 가십시오. 이 외의 다른 것은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오직 이 약속의 말씀만 가지고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가서 이렇게 구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옵소서."
혹시 죄 때문에 낙망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은 불법의 무거운 짐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사 43:25). 여러분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만한 공로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기록된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가서 간청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약속을 이행하실 것입니다.
혹시 끝까지 구원에 매달려 있지 못할까봐,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국에 가서는 버림받은 자로 나타나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은혜의 말씀을 들고 보좌로 가서 간청하십시오.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사 54:10).
혹시 구세주의 임재 의식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어서 슬픈 마음으로 주님을 구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 3: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사 54:7).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들을 마음껏 먹으며 여러분의 믿음을 키워 가십시오.
여러분이 두려워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의 아버지가 친히 쓰신 약속 어음을 들고 믿음의 은행으로 가십시오. 가서 "주의 종에게 하신 이 말씀, 주께서 저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소서"라고 말씀드리며 두려움을 쫓아내고 필요로 하던 것들을 얻으십시오.
[ J.I패커와 함께 QT - 2024년 04월 28일 ]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롬 1 : 13)
어떻게 자신에게 맞는 사역을 발견하는가?
첫째, 성경에 제시된 범위와 목표, 우선순위를 잘 알아야 한다.
둘째, 성령의 자극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단면도에 자신의 판단을 복종시켜야 한다.
마지막 요소는 기회이다. 섭리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역에 부르고 계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환경을 지배하여, 그로 하여금 그 사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만일 환경이 그것을 막는다면,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합당한 사역을 계획하고 계시지만, 환경의 문이 닫혔기 때문에 그것은 본래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옳다(1995a:57).
묵상: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는 그가 인도하시는 방향으로 내가 움직이도록 만드신다.
[ 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2024년 04월 28일 ]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누가복음 18장 18-19절을 보라.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대답하셨을까? 주님은 왜 선을 하나님께 돌리셨는가? 왜 질문자가 무심코 사용한 단어에 초점을 맞추면서 영생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으셨는가? 여기에는 깊은 뜻이 들어있다.
예수님께서 돈 많은 관리에게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말씀하신 뜻을 함께 생각해보자.
1. 예수님은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너는 선하지 않다. 하나님 한 분만 선하다면 너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선하지 않다. 네가 네 속에서 선한 것을 찾으려 한다면 영생을 발견하지 못 할 것이다. 선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너는 악하다(마 7:11). 그러므로 이 모든 계명들을 어릴 때부터 다 지켰다는(눅 18:21)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2. 예수님은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선하신 하나님은 유일한 영생의 소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선하신 하나님을 향해 초점을 맞추었다. 너는 우연하게 사용한 단어를 가지고 네가 구하는 영생의 근원을 향해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선하신 하나님만이 너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다. 너는 나를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단지 하나의 선생으로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다고 말하겠다. 내가 자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 만들었다. 네가 나를 사람으로 보고 선한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3. 예수님은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소망을 얻으려면 선한 선생님께 물어보지 말고 선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선하신 구세주시여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 90:14)라고 기도하라. ‘선하신 주님, 제가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오니 주님의 선하심을 인하여 저에게 영생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
4. 예수님은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십계명 중 처음 네 계명은 한마디로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선하심을 갖고 계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십계명 중 처음 네 계명, 즉 선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선하신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며, 주일날마다 선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여 일하지 말고 거룩하게 지킬 것이며,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기 때문에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는 명령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5. 예수님은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내가 이제 말할 다섯 계명(20절)을 지킨다면 그것은 네가 과연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선하신 하나님을 소중하게 섬기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여 줄 것이다. 네가 살인, 거짓말, 간음, 도둑질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이외의 것을 섬긴다는 증거다.”
6. 예수님은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 중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다시 언급하진 않겠다(20절). 네게는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는데, 곧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내 명령을 너는 지키지 못할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산과 안전을 탐내지 말라. 대신 선하신 하나님 품 안에서 안식을 취하라. 지위, 권력, 안락을 탐내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 선하신 하나님을 보고 즐거워하지 못하는 것이 네 인생의 문제다.”
7. 예수님은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너에게 나를 따르라고 한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른 결과, 선하신 하나님을 발견한 내 제자들처럼 너도 나를 따르라는 뜻이다. 나를 따르면 네가 나를 선한 선생이라고 불렀을 때 네가 하늘나라로부터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또는 얼마나 멀리 있는지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주님은 선하십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배우고 맛보고자 주님께 왔습니다. 우리는 선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하시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는 단지 한 사람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선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도 선하고, 예수님의 약속도 선하고, 예수님의 경고도 선하고, 예수님의 명령도 선하십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선하신 분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선하다고 하는 것들을 전부 버립니다. 우리의 보화는 주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를 이 좁은 길에서 계속 지켜주시옵소서.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선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나는 주님만 사모합니다. 아멘.
[ 은혜와 사명 - 2024년 04월 28일 ]
영광의 날에 잇대어 사십시오.
[ 성구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 내용 ]
때때로 우리는 일에 몰두하다가, 원래 그 일을 시작했던 궁극적인 목적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미시적으로 주어진 현재의 일에 집중하다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잊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궁극적인 부르심이나 우리 인생의 최종적인 목적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의 영혼은 금세 피곤해지고 우리의 마음은 권태로움에 사로잡힙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간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면서 사는 동시에, 앞으로 도래하게 될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의 모습도 늘 염두에 두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종말의 빛을 받으면서, 영원에 잇대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우리의 육체는 점점 더 쇠잔해져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동자는 거룩한 영화의 소망으로 점점 더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는 노래는 자주 끊깁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해 바치는 우리의 헌신도 시시때때로 일관성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자주 낙담하고, 얼마나 자주 마음에 불붙는 소명감을 잃어버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이런 어려움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죄의 속박, 환경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겨드랑이에 날지 못하는 장치를 끼운 채 뚜껑 없는 새장 속에 갇혀 살아가는 새처럼, 억압당하고 속박당합니다. 하지만, 영광의 날이 오면 그 모든 속박이 벗겨지고, 우리는 훨훨 날아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날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날을 우리가 어떻게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없이 이어질 무한한 영광의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예수 죽인 것을 우리의 몸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날들은 그야말로 바람과 같이 잠깐 스쳐가는 것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 편한 것보다 영원히 기쁜 것을 택해야 합니다. 잠시를 우리의 욕망을 따라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것보다, 잠시 고단한 길을 걷더라도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며 사는 것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영원에 잇대어, 힘에 진하도록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 묵상 ]
칼빈(John Calvin)은 그의 책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날을 사모하기를 탄식하며 울부짖는 것처럼 신음하며 사모해야 한다.” 여러분! 영원을 사모하며, 살고 계십니까? 영원에 잇대어 섬기고 계십니까?
[ 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은혜와 사명 - 부흥과개혁사 ]
[ 은혜와 사명 ]
[ 청교도묵상 - 2024년 04월 28일 ]
감사 2 - 칼빈
1.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답할 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최상의 예배이다.
2. 성령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예배에 관하여 말하면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와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예배의 두 부분을 풀 수 없는 끈으로 연결한다.
3.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추구되어야 함과 같이 그것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만 감사해야 한다.
4. 슬픔과 근심은 영혼을 가둔다. 그리고 혀를 억제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지 못하게 한다.
5. 만일 우리가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복은 우리의 부주의함 때문에 사라지고 만다.
6.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우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로 포착되어야 한다.